April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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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째 미궁 5·18 ‘손수레 시신’ 행방 찾는다

5·18 진상규명조사위, 관련자·목격자 제보 접수

5·18 손수레 시신
5·18 손수레 시신[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국민제보 포스터 발췌]

Korea 24 News— 5·18 진상규명조사위가 41년 동안 주인공을 알 수 없었던 이른바 ‘5·18 손수레 시신’의 행방과 신원을 추적한다.

이 시신은 1980년 5월 21일 새벽 광주역 인근에서 발견된 2구로 손수레에 실려 옛 전남도청 앞 광주 동구 금남로로 옮겨졌다.

최초 사망자는 아니지만, 당시 많은 시민이 사실상 처음으로 목격한 사망자로 알려져 있다.

‘계엄군이 시민을 죽였다’는 증거를 눈으로 직접 확인한 시민들이 분노해 대거 시위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 시신을 목격한 사람은 많지만 정작 이 시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갔는지 여부는 41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

이 시신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것은 1980년 5월 21일 오후 옛 전남도청 앞 금남로를 촬영한 사진에서다.

옛 전남도청 앞에 놓인 5·18 손수레 시신
옛 전남도청 앞에 놓인 5·18 손수레 시신[1980년 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로 활동했던 나경택 전 연합뉴스 광주전남취재본부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당일 오후 계엄군은 금남로 거리에 모여있던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를 자행하면서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 이후 누구도 손수레 시신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숨진 시민 수십 명이 인근의 여러 병원으로 이송될 때 손수레 시신도 함께 옮겨졌을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시신을 옮겼다는 증언이나 옮기는 것을 봤다는 목격담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5·18 항쟁 기간 숨진 것으로 집계된 167명 중 손수레 시신이 포함돼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5·18 조사위가 사망자 전원에 대한 행적을 처음부터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단서가 나타나지 않았다.

조사위는 사망자 행적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41년간 신원 미상으로 남아있던 ‘무명열사’ 1기의 시신이 5·18 당시 행방불명된 신동남 씨라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따라서 조사위는 손수레 시신의 신원과 행방이 5·18의 숨겨진 진실을 찾는 또 다른 열쇠가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조사위는 손수레 시신의 신원을 알고 있거나 시신을 수습한 사람을 찾기 위해 제보 접수에 나섰다.

광주는 물론 서울역과 용산역, 광명역 등에 제보를 요청하는 현수막을 게시하는 등 제보 캠페인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손수레 시신에 대한 제보는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02-724-9110)로 연락하면 된다.

결정적 제보일 경우 심사 후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

5·18 조사위 관계자는 “손수레 시신의 신원과 행방을 확인해 그들이 사망한 경위까지 소상하게 밝힐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 거리에 게시된 현수막
전북 익산 거리에 게시된 현수막[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