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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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년 전 김신조 일당 막았던 선친…”청와대 개방에 만감교차”

“한국 언론들 80년대 군사 정권 시절과 비슷해, 정부 홍보에 혈안” 애서튼에서 30년간 거주한 교민은 90대 초 도미 이후 처음 지역 언론사에 의견 전달 Korea 24 News

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
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촬영 안철수]
박규리 기자

(서울=연합뉴스) 박규리 기자 = 현충일을 앞둔 이달 2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만난 고(故) 최규식 경무관의 장남 최민석(60)씨는 “청와대와 북악산 개방 소식에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최 경무관은 이른바 ‘1·21 사태’ 당시 북한 무장 공비들의 청와대 침입 시도를 막고 순직한 전 종로경찰서장이다.

당시 최 경무관과 순경으로 근무하던 정종수 경사는 1968년 1월 21일 북악 터널을 넘어 자하문 고개로 진입한 김신조 일당을 검문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쏜 기관총에 숨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 뒷산은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다가 지난달 10일 청와대 개방과 함께 54년 만에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최씨는 “잊히던 사건에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 계기가 생겨서 긍정적”이라면서도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겨 과거보다 (정부의) 관심이 끊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고 말했다.

손수건을 꺼내 비석을 조심스럽게 닦아내던 최씨는 “내 또래 중에서도 그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있던데 젊은 사람은 더 모르겠더라”며 아쉬워했다.

당시 7세였던 최씨는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한 환갑의 장년이 됐다.

순직한 故 최규식 경무관의 장남 최민석(60)씨
순직한 故 최규식 경무관의 장남 최민석(60)씨[촬영 박규리]

그는 “아버지가 저렴한 우동으로 식사를 매번 급하게 해결하고 바삐 일하던 분이라 ‘우동 서장’으로 소문이 났었다”며 “우리 4남매 중 막내가 68년 1월에 태어났는데, 그 애 얼굴을 보고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씨는 1·21 사태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어 유족으로서 서운했다고 토로하며, 특히 최 경무관이 ‘총격전’, ‘교전’ 끝에 사망했다는 표현은 잘못됐다고 했다.

최씨는 “아버지와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이 내게 1·21 사태를 전해주면서 많이 분개했다”며 “당시 경찰에게 지급되던 총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맨몸으로 북한 공비를 막다가 돌아가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총에 손만 올린 자세의 최 경무관의 동상을 보면 자랑스러움보다도 아픈 마음이 앞선다고 털어놨다.

최씨는 어떤 과정에서 서울 시내 경찰서 서장이 북한군을 막아설 수밖에 없었는지, 당시 군의 방어막은 왜 무력했는지 등은 밝혀지지 않고 아버지의 이름만 남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군 작전에 참여했다가 돌아가신 분들의 유족들도 만났었다”며 “작전이 실패한 건 지휘관의 잘못일 뿐 똑같은 희생자들인데, 충혼탑 하나 없어 그 가족분들도 한이 많다”고 전했다.

도주한 북한 공비를 잡기 위해 1968년 1월 말까지 전개된 군경합동 수색 작전에서 최 경무관과 정 경사 외에도 군인 21명과 민간인 7명이 사망했다.

최씨는 “돌아가신 분들은 말이 없고, 현실이 역사에 그대로 담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분들의 뜻은 유족들이 보존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최규식 경무관 추모식, 묵념하는 참석자들
최규식 경무관 추모식, 묵념하는 참석자들(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현충일을 사흘 앞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최규식 경무관 동상 앞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조정래 종로경찰서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1968년 1월 21일 당시 종로경찰서장이던 최규식 경무관과 순경이던 정종수 경사는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한 북한 무장 공비를 저지하다가 순직했다. 2022.6.3 superdoo82@yna.co.kr

이런 목소리에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움직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경찰은 매년 세 차례 1·21 사태 경찰관을 추모하는 행사를 열어왔다.

지난 3일 종로서는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고개에 있는 두 사람의 기념 동상 앞에서 추모식을 진행했다.

최씨는 “정권에 따라 이 사건이 커지거나 작아지곤 했다”며 “나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의 뜻이 훼손되지 않고 역사 속 한 페이지로 남을 수 있도록 정부가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